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레이시 샌더스 (문단 편집) == 선수 생활 ==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|메이저리그]] 경력은 없고 [[마이너 리그 베이스볼|마이너리그]] Rk, A+, AA, AAA에서 10년간 뛰다가 [[1999년]]에 [[외국인 선수 드래프트]]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. 시범 경기에서부터 2개의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껏 화력을 과시했고, 시즌 초반 [[이승엽]]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[[이병규(1974)|이병규]][* 물론 1999 시즌이 타고투저이기도 했고, 이병규는 이 해 잠실구장을 쓰면서 30-30을 달성하는 등 장타력이 있었다.]와 홈런왕 경쟁을 했다. 그러나 [[이승엽]]이 5월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타자들보다 압도적 기세로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하며 추월을 허용하고, 결국 40홈런으로 그 해 홈런 3위를 기록하였다. 이 해 해태는 팀 홈런 210개[* 그 당시 팀 홈런 역대 1위, 2021년 현재 역대 4위.]를 쳤는데, 이는 [[양준혁]](32홈런), [[홍현우]](34홈런), [[장성호]](24홈런), [[스토니 브릭스]](23홈런)[* 당시 그의 타격 기록은 상당히 극과 극이었다. 383타석에서, '''16사사구에 85삼진을 기록하면서 타율은 .283 홈런은 23개...''']과 함께 그의 도움이 매우 컸다 할 수 있겠다. 또한 만루홈런만 3개를 날리며 역대 외국인선수 한시즌 최다 만루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.[* 국내 타자들을 따져도 한시즌 4개의 만루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1999년의 [[박재홍(야구)|박재홍]], 2009년의 [[김상현(1980)|김상현]], 2015년의 [[강민호]] 세명 뿐이다.] 그러나 이듬해 해태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데, 그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했다는 설이 있다. 해태는 2000년 [[이대진]], [[최상덕]], [[성영재]]가 꽤 준수하게 활약한 마운드에 비해, [[장성호]]와 [[헤수스 타바레스]] 이외에는 믿을만한 타자가 없을 정도로 타선이 폭망하여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. 외국인 타자 교체만 '''6번''' 한 것을 생각하면[* 에디 피어슨, 호세 말레브, 아르키메데스 포조, 제이슨 배스, 케이스 미첼, 헤수스 타바레스. 그나마 타바레스가 타율 0.334에 도루 2위(31개)를 기록했다. 경기당 도루 수는 그해 도루왕이었던 [[정수근]]보다도 많았다.][* 당시까지만 해도 외국인 선수 교체한도 규정이 없어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게 무제한으로 가능했다. 실제로 2001년 한화 이글스도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외국인 투수를 5번이나 교체해댔고, 결국 2002년부터 외국인 선수 교체 제한규정이 생기게 되었다.] 그와 재계약하지 못한 것을 [[김응용]] 감독은 아쉬워했을 것이다.[* 안그래도 덩치 큰 왼손잡이를 선호하는 김응용 감독 특성상 더욱 아쉬워 했을수밖에...] 물론 해태의 특유의 언플이 작용했을 것이다.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한 해 뛰어난 성적 올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선수 같아 보이지만, 샌더스가 가지는 의미는 따로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